창원 불곡사 주지 도홍스님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산사와 도량 곳곳에는 꽃이 만발합니다. 하얀 목련이 고요히 피어나면, 그 곁에는 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지고, 또 한편에는 짙은 진달래가 봄빛을 더합니다. 저마다 다른 색과 향기를 지녔지만, 어느 꽃도 “나만이 아름답다”고 다투지 않습니다.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봄 풍경을 이룹니다. 자연은 이처럼 다름을 갈등의 이유로 삼지 않고, 조화와 공존의 질서 속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너무나 자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 세대, 지역, 이념, 계층의 차이는 물론이고, 때로는 종교적 차이마저 대립과 배척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며, 각자의 전통 속에서 진리와 구원의 길을 모색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내외의 여러 뉴스 속에서 종교 간 오해와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번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접합니다. 인간의 행복과 사회의 평화를 추구하여야 할 종교가 오히려 서로를 미워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부처님께서 이 땅에 나투심 뜻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2,600년 전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특정한 교단을 세우거나 특정한 가르침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노(老)·병(病)·사(死)와 같은 인간 보편의 고통을 몸소 겪으시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시어 마침내 정각(正覺)을 이루셨습니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자비와 지혜입니다. 자비는 나와 가까운 사람만을 향한 마음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입니다. 지혜는 나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와 타인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깊이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비와 지혜의 정신이야말로 종교 간 평화와 화합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토대입니다.

종교 간 화합이 모든 종교는 같다거나 또는 같아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올바른 불교도라면 사교(邪敎)나 불의(不義)와 무분별하게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웃 종교의 교리와 전통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인간의 존엄·생명 존중·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함께 실천하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 구현하는 올바른 불교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평생에 걸쳐 이웃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종교가 달라도 자비와 연민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법정 스님 또한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과의 깊은 교류를 통해 두 종교 간 평화와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달라이라마 존자나 법정 스님과 같은 큰 실천을 당장 이루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 종교인을 향한 존중의 언어, 타 종교에 대한 편견을 줄이려는 스스로의 노력,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와 실천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자연은 서로를 질투하거나 배척하지 않습니다. 목련은 목련대로, 벚꽃은 벚꽃대로,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자신의 빛깔을 지키면서도 함께 봄을 이룹니다. 우리 또한 이웃 종교와의 열린 대화와 협력을 통해 종교 간 갈등을 넘어, 우리 사회 곳곳의 분열과 상처를 함께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서로 다른 믿음이 ‘갈등의 이유’가 아니라 ‘협력의 출발점’이 될 때, 종교는 비로소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종교 간 평화와 화합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자비와 지혜의 정신을 우리 삶과 사회 속에 실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지 도홍스님
[약력]
· 1974년 근파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75년 불곡사 금강계단에서 사미계 수지
· 1979년 사)대한불교불곡사 우담문도회 불교전문강원 졸업
· 1979년 불곡사 금강계단에서 명해스니을 전계사로 비구계 수지
· 1997년 창원 비음산 불곡사 주지 임명
· 창원 교도소 교화법사회 제3·4대 회장 역임
· 창원 봉림 청소년 관장 역임.
· 사) 대한불교불곡사 우담 문도회 이사장
· 현) 창원 비음산 불곡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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