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주 범어사 방장 정여 큰스님 원력
수좌 정진 공간 ‘금오선원’ 지난해 말 개원

밀양 금오산(金烏山) 여여정사 일부 경내모습
경남 밀양 금오산(金烏山) 자락에 위치한 여여정사(주지 도명 스님)는 흔히 조용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가보면 그 웅장함에 먼저 놀라고 그 신비로운 자태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여여(如如)와 정사(精舍)의 결합이라니, 수행 도량으로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여여’란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상태, 흔들림 없는 본래의 모습을 의미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정사’는 승려가 불도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집, 즉 전통적인 절을 의미한다.
여여정사는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의 원력으로 창건된 범어사 말사로, 지난 30여 년간 크고 작은 불사를 이어온 끝에 수행 도량의 면모를 갖췄다. 여기다 지난해 11월 부설 금오선원(金烏禪院)을 개원함으로써 참선 정진과 전법 활동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수행처로서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
범어사 말사 중 처음으로 선원 열어
주지 도명 스님은 금오선원을 개원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여)큰스님이 중창 불사한 금강암이 영남 최초의 선(禪)을 펴던 경허 큰스님께서 주석하셨던 도량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음에 선원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원력을 젊었을 때부터 항상 가지고 계셨던 거지요. 그리고 또 범어사가 선찰대본산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범어사 본사 안에 선원이 하나 있고 말사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경허 스님 당시에만 해도 산 내에만 선원이 8~9개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큰스님은 젊었을 때부터 선원 하나 지어야겠다는 원을 가지고 계셨고, 범어사 방장까지 되셨으니 시절 인연이 왔다고 생각하셔서 몇 년 전부터 선원 불사를 하게 됐습니다.”
새로 지은 금오선원은 190여㎡(60여 평) 규모로 10여 명의 스님이 정진할 수 있는 선방 체계를 갖췄다. 본동 양측에는 각 2실씩 총 4개의 방치 배치됐고, 요사채는 99㎡(30평) 규모로 방 5실이 마련됐다. 이와 함께 조실채와 입승 스님이 사용하는 건물도 별도로 세워졌다. 향후 세면장과 목욕실을 추가할 계획이다.
현재는 개원 후 첫 동안거 중이다. 전 봉암사 선원 주지 진범 스님께서 입성(팀장)을 하고 수행에 능한 11분의 스님들이 수행정진 중이다. 동안거 중인 스님들은 보통 새벽, 오전, 오후, 저녁 등 4차례에 기본 8시간 정진한다. 그 외에 선원 주변을 정리할 때는 울력에 동참하기도 한다고.
여여정사 굴법당 내부모습
수행·신행·생활 공간 두루 갖춘 도량
선원 이름이 왜 하필 금오일까?
도명 스님의 설명이다. “여여선원 뒷산이 금오산입니다. 쇠 금(金)에 까마귀 오(烏) 자인데, 원래 불가에서는 금 까마귀는 불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제 여여선원은 수행 공간, 신행 공간, 생활 공간을 두루 갖춘 도량이 됐다.
여여정사는 1992년 정여 대종사가 밀양 삼랑진의 깊은 산골과 인연을 맺으며 창건 불사가 시작됐다. 1997년 대웅전 터파기를 시작으로 약사전 동굴법당, 종각, 관음전, 산신각, 선혜원, 문화원, 시민선원 등 전각과 수행·문화 공간을 완성하며 도량의 기반을 다졌다. 2021년수좌 선방 건립에 착수해 2025년 8월 준공을 했고, 이번 개원으로 비로소 정여 대종사가 평생 발원한 ‘수좌 수행도량’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도명 스님은 창건주 정여 대종사께서 35년 전 이곳에 땅을 매입하게 된 신비로운 영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야기인즉슨, 정여 스님이 계속 꿈속에 나타난 산천 모습과 여여선원 지형이 딱 들어맞았고, 처음 만난 다른 종교인으로부터 땅 매입을 권유받고 바로 구입하게 됐다는 것. 그만큼 시절 인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정여 대종사 창건 관련 영험담도 화제
여여정사는 참선 수행 도량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렸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은둔’의 수행처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수행도 불가능하고 수좌(首座)들의 수행도 지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정여 대종사의 안목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도명 스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큰스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장래에는 불교뿐만 아니고 모든 종교가 (형편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개인이나 국가가 부유해지면 종교는 점점 필요성이 떨어지는 시대가 온다고 예상하신 거지요. 절집도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셨지요. 그래서 여러 가지 불상이라든지 약사전 등 방편적인 시설들을 많이 갖춰 대중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하신 겁니다.”
여여선원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붐빈다. 한적하면서도 볼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최대의 자연 동굴법당인 약사전은 그 규모와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수만 개의 돌을 쌓아 만든 동굴법당은 인간의 기술과 자연의 신비로움이 만나 연출하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자생력 확보 위해 수목장·납골당도 운영
특히 대부분 현판과 주련의 글씨가 한글로 돼 있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여여정사만의 특징이다. 호방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정여 대종사의 서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여선원은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10여 년 전에 수목장 허가를 받아 불자뿐만 아니라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망자들의 유해를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곳은 금계포란형, 즉 황금 닭이 알을 품는 그런 형세라서 매우 양명한 것으로 알려져 수목장도 인기가 있다. 이 밖에 납골당 운영도 계획 중이다. 특히 뼛가루를 바로 보관하는 형태가 아니고, 뼈를 소성해 사리로 만들어 모신다는 계획이다. 그러면 위생적인 데다 냄새가 안 나고 부패도 없는 이점이 있다는 것.
소탈한 주지 도명 스님 솔선수범 절 경영
여여선원은 향후 재가자 선원도 개원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출가자와 재가자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도량으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국제적인 선원 개원 비전도 가지고 있다. 부산에 해양수산부가 이전해 오면서 부산이 국제해양도시로 발돋움할 경우 향후 더 많은 외국인이 부산을 찾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 현재는 범어사가 외국인 템플스테이를 맡고 있지만 수용에 한계가 있다. 여여선원이 그 기능을 일부 분담할 예정이다.
한편 도명 스님은 1998년에 수계를 했는데 2013년부터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시골 출신답게 사부대중들과 울력을 같이하며 소탈하면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명 스님에게 새해 대중들에게 위로가 될 말씀을 좀 해달라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입니다. 물질적으로나 여러 가지 기후문제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자국 이익 중심 시대가 되었습니다.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된 거죠.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삶의 본질은 달라진 게 없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법이라든지 사상제, 팔정도 같은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의식이 순수해지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구가하면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추상적인가요? 하하.”
한마디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각자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렷다. 일체유심조!
글=윤현주 <더 이너뷰> 대표
사진=안진환 <산사의 향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