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휴전 이후 일본의 귀환 거부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던 재일학도의용군 용사들이 모여 생활했던 부산 ‘소림사’에서 주지 종인스님,재일학도의용군 부회장 김철호, 국가보훈부 차관 강윤진 등 내빈들과 추모행사 모습. [사진=안진환기자]
6·25전쟁 당시 학업과 생업을 내던지고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장에 뛰어들었던 재일학도의용군의 삶과 희생을 기리는 첫 위령제가 19일 오전 11시,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소림사(주지 종인스님)에서 ‘재일학도의용군 추모공간 기념식 및 위령제’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642명의 희생을 기리고, 휴전 이후 오랜 기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고초를 겪었던 242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부산 소림사는 전쟁 직후 고향으로 돌아갈 송환선을 기다리던 재일학도의용군들이 머물렀던 역사적 공간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말부터 ‘허가 없이 출국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재입국을 전면 거부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용사들이 오랜 기간 일본에 있는 가족과 생이별하며 소림사에서 머물러야 했다.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철호 동지회 부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번 행사는 단순한 위령제가 아니다”라며 “재일학도의용군의 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동시에, 향후 위령탑 건립과 역사 전시관 조성을 통해 그 숭고한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계승하기 위한 역사적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림사를 역사적 기억이 살아 숨 쉬는 성지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보훈부 강윤진 차관 역시 추모사를 통해 소림사와 재일학도의용군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했다. 강 차관은 “소림사는 재일학도의용군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 곳”이라며, “오늘 행사명인 ‘통한의 기억을 넘어’처럼 이제 우리는 슬픔과 상실을 넘어 그 숭고한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계승해야 한다”고 전했다.

소림사 법당에서 사부대중 100여명이 모여 추모제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안진환 기자]
소림사 주지 종인스님은 16세 때부터 이 사찰에서 수행하며 당시 재일학도의용군들과 함께 생활했던 역사의 산증인이다. 종인스님은 “당시 소림사에는 ‘ㄷ’자 형태의 납골당이 있었는데, 전 주지이신 해운스님과 금광 노스님께서 의용군들의 치유받지 못한 영혼과 아픈 육체를 돌보며 숙식을 제공하셨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한 종인스님 은사스님인“해운스님은 천도재 비용 등을 다른 용도로 쓰지 않고 모두 의용군들의 식사와 생활 지원에 사용하셨다”며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증언했다.
1951년 당시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군의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 [사진출처 =소림사]종인스님은 끝으로 “부디 살아 있는 동안 이곳 소림사가 재일학도의용군의 역사를 기리는 현충시설로 지정되고,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과 역사전시관이 세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그날이 올 때까지 모든 정성과 원력을 다해 숭고한 헌신이 큰 결실로 이어지도록 소망하겠다”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한편, 재일학도의용군은 1950년 9월 12일 제1진이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미군 군함을 타고 참전한 것을 시작으로 총 5차례에 걸쳐 642명이 대한해협을 건넜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전장에서 피와 땀을 흘린 이들을 두고 1952년 당시 미국 CBS 방송의 조지 하먼 일본 도오쿄지국장은 ‘유령부대’라는 가슴 아픈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현재 642명의 용사 중 전사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제외하면 현)박운욱 동지회장( 99세)이 유일한 생존자하고 있으나, 현재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